경계는 단절이 발견되는 곳이자 연결이 일어나는 모순적 공간이다.

글/ 임진호 (독립큐레이터) 

 

2021.05

요한한은 작업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그것을 둘러싼 구조들에 부딪침으로써 개인의 자리를 규정하는 비 가시적 경계들을 드러내었다. 2013년의 퍼포먼스 <Asperger Choreography (2013)> 에서 그는 행인의 흐름을 방해하는 일탈적 행위로 거리를 점유하며 당위적 경계로서의 사회적 규범을 노출하였다. 단순한 안무를 수십회 반복하며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였던 <Thread (2017)> 에서는 작품과 관객, 행위의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암묵적 제도를 가로질렀다. 경계를 위반하거나 흐트러뜨리는 일련의 퍼포먼스들은 단절이 발견되는 경계에서 연결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부터 이어져 온 <공명동작> 연작에서도 그는 주체와 객체, 구조와 직관, 신체의 현실과 언어적 네트워크를 중첩시키며 몸과 정신의 한계를 정하고 단절시키는 경계들을 횡단하였다.

퍼포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신체의 사용을 규정하는 안무가 아니라 감각을 (기호화된 신체 경험을) 전달하는 일종의 통신 구조이다. 춤은 소리의 파장과 같이 하나의 점에서부터 시작된다. 0번에서 1번으로, 1번에서 2번으로...최초의 몸짓은 시선의 사슬을 따라 연쇄한다. 퍼포머들은 전달되는 춤의 기호를 반복 하며 각 신체 고유의 현재로 재생산한다. 번역된 몸짓의 구조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닿아 또 다른 움직임으로 파생한다. 모두의 춤은 동심원을 이루지만 누구도 같은 춤을 추지는 않는다. 공간에 흩어진 각각의 움직임은 공기를 울리는 또 다른 진원, 북의 두드림에 공명할 따름이다. 시선이 단절되는 곳에서는 화상 통화의 네트워크가 몸 기호를 매개하고, 관객과 퍼포머들은 실시간 오픈채팅에 접속하여 몸짓에 관한 (또는 무관한) 언어들로 또 다른 차원에서 연결된다. 몸에는 구조적이고 언어적인 기호작용과 직관적이고 생리적인 신체 현실이 교차한다. 행위자의 몸은 움직임의 주체이고, 기호이자 매체이며, 시선의 객체로서 복합적인 체계를 이룬다. 하나의 체계로 정의할 수 없는 몸은 어지럽게 중첩된 경계의 틈 사이로 흩어져 확장된다.

공명 속에서 개인은 자기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피부는 몸을 둘러싼 영토의 한계이지만, 동시에 세상에 대한 몸의 감각이 경험되는 촉매의 막이다. 타자를 감각하고 타자에게 감각되는 존재의 열려있는 지도이다. 북소리가 피부를 두드린다. 소리의 울림이 춤으로 증폭된다. 신체 내부로 뻗은 신경망이 몸 밖의 현실로 확장되는, 피부는 가장 원시적인 미디어이다. 그래서 죽은 동물의 피부를 때려 공기를 울리는 고대의 악기는 원초적 감각을 깊숙한 곳에서 끌어 올리는 듯하다. 북은 한계를 초월하여 무한에 접속하는 원시적 의식을 현대의 단절 (과잉 연결) 풍경으로 소환하는 미디엄(영매) 인지도 모른다. 곧 피부의 두드림으로 인해 단절된 육체들의 닫힌 공간들이 유기적 전체의 열린 공간으로 확장된다. 그렇게 <공명동작 >에서 피부는 연결이 매개되는 열려있는 경계로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계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는 흥미롭게도 모순적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경계는 열려있지만 닫혀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행위는 명백한 단절이 발견되는 곳에선 경계를 교란하며 연결을 도모하지만, 모든 것이 쉬이 연결될 수 있는 곳에서는 단절을 유도하는 장치들로 연결을 차단시킨다. 감각이 유기적으로 확장 연결되는 퍼포먼스의 장에 오픈채팅이라는 과잉 연결의 테크놀로지를 삽입함으로써 지금 여기의 공간으로 향하는 시선을 분산시킨 것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경계에 대한 그의 반복적인 두드림이 결코 모두가 모두에게 열려있는 극단적 연결의 유토피아를 향한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모두를 벌거벗기는 연결은 모두를 고립시키는 단절만큼이나 폭력적이다. 극단적 연결이란 결국 무언가의 (몸의) 극단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이 초연결의 네트워크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 속에서 사라진 몸을 애도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퍼포먼스의 참여자들은 네트워크를 타고 몸의 감각을 연장해가며 그들이 포기한 만큼의 보상을 (연결을) 새로이 창출해낸다. 따라서 이는 (몸의) 상실의 사태이지만 동시에 기묘한 (몸의) 확장의 사태로 진행되는 것이다.

경계는 균형의 축이다. 그것은 연결과 단절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새로이 쓰여지는 가능성의 공간임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공명동작>에서 충돌하는 촉각적 표면과 시각적 표면, 원시적 의례와 현대의 기술, 직관과 기호, 신체와 언어가 결코 무리한 대립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삶이 경계의 빠른 변화 속에 있음을, 그리하여 움직이는 경계는 새로운 제자리 찾기를 지속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